[보도자료] 경성, 사진에 박히다
보도자료 2008/12/13 21:13 |
근대 사진에 담긴 진풍경들, 사진으로 근대를 읽는다
근대 신문 기사 속에서 발견되는 사진 문화는 다종다기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피식민 조선인들에 대한 통제와 관리의 수단으로, 신분증명의 도구로, 정보 독점의 기술로 사진이 행사되기도 하고, 사진관을 통한 초상 이미지의 대중화가 진전되면서 전통적 재현 방식에서 근대적 재현 방식으로의 전환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든 각종의 사진 관련 이슈와 범죄가 발생했으며, 한인 이민사에서 비롯된 사진결혼 제도가 성행하고 근대적 성풍속의 단면을 보여주는 에로 사진이 출현하기도 한다. 시간적 거리 때문에 생소하거나 낯선 풍경들도 있지만 안중근 사진 소지자에 대한 단속 사건은 1980년대의 숱한 공안 사건들을 떠올리게 하며, 자살 전날 사진관에서 찍은 사진을 신문사에 보내고 죽은 한 젊은 학생의 사연에는 2007년 세계를 놀라게 한 버지니아공대 총기 사건의 주인공이었던 한인 학생의 모습이 오버랩 되기도 한다. -「프롤로그」에서
“새해에 첨군자(僉君子, 여러 점잖은 사람)에게 요긴한 실물로써 바치려고 안 의사 중근 공의 최후 승리, 곧 하얼빈 정거장에서 이등박문을 죽일 때 모양과 여순 옥중에서 유언하던 사실까지 기록하여 네 가지 종류로 각각 사진을 박았습니다. 이 사진 한 장에 25전씩 받삽는데, 이것은 곧 안공의 전기 간행에 보용할 터이올시다. 유지 첨군자는 이 기회를 놓치지 마시오.” -「사진으로 맺어진 사상적 동지, 안중근과 송학선」중에서 ■ 이 책을 말한다 낡은 사진에 담긴 근대, 모던의 시공간과 감수성을 엿보는 이미지 산책! 사진의 눈으로 근대를 바라보라 영상 없는 세상을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이미지의 범람 속에 허우적대는 현대인이 근대를 상상할 때, ‘이미지의 기원’을 찾아내는 일은 시대 상상과 연구의 가장 기본적인 절차가 될 것이다. 또한 사진으로 근대를 상상하는 작업은 사진이라는 매체 그 자체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도 빼놓을 수 없는 과정이 될 것이다. 테크놀로지 발전과 디지털 카메라의 대중적 보급으로 사진의 인식과 활용이 이전과는 전혀 다르게 변모하고 있는 지금, 새로운 사진 문화에 밀려 아날로그 사진 개념과 문화는 급속히 기억으로 퇴각하고 있다. 이 급변의 시기에 20세기 초 조선에 불붙은 사진 문화를 살피는 일은 사진의 정체성을 되묻는 과정이기도 하다. 『경성, 사진에 박히다』는 근대 문화의 창이자 이미지의 씨앗인 사진의 눈을 통해 근대 조선의 풍경들과 사건들, 거기 드리운 식민지적 그늘을 둘러보고 근대인이 지녔던 욕망과 희열, 시대의 절망과 도전, 일상의 쾌락과 불안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 책을 통해 사진으로 근대를 밝히는 상상의 불길을 피워보기를 바란다. 그 불꽃에 비친 근대 한국의 단면을 찬찬히 구경하다보면 지금 여기의 주소를 찾을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근대를 상상하는 발화점, 사진의 힘 사진 없는 근대-20세기를 상상할 수 있을까? ‘근대’ 라는 단어를 입에 담는 순간, 병원과 학교와 공장과 형무소와 같은 건축물들, 전차와 기차 등 새로운 탈것, 관광과 여행이라는 근대적 체험, 이밖에도 독서와 연애와 위생과 체육과 출산 등 수많은 담론과 실천이 새롭게 타오르며 들끓는 역동적인 이미지가 피어오른다. 거기에 더해, 한국의 근대는 일제 강점으로 얼룩져 더욱 문제적이고 복합적인 형상을 하고 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 근대 이미지의 상당 부분은 근대에 실행되어 지금까지 보존된 신문기사, 문학작품, 그리고 사진을 통해 구성되었다. 이렇듯 철도와 더불어 근대에 탄생하여 ‘모던의 이미지’를 만들어낸 기계이자 매체인 사진은 명실 공히 근대를 상상하는 발화점이다. 근대에 속한 기술이자 근대를 비추는 문화적 기제로써 사진을 통해 우리의 근대 문화를 들춰보고 해석하는 작업의 결과인 『경성, 사진에 박히다』가 제기하는 질문, 즉 ‘사진에 박힌 우리의 근대는 어떠했나?’ 라는 물음은 근대 인식의 스펙트럼과 그 감수성의 기원을 찾으려는 속 깊은 작업의 기초가 될 뿐만 아니라 ‘그 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라는 보다 친근한 사회 문화사적인 궁금증도 충족시킬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사진에 박힌 근대, 그 재현의 아찔한 함정 사진의 등장은 문자의 시대에서 이미지의 시대로 내딛게 만들었다. 철도가 이동과 영역이라는 개념을 더욱 확장시키고 구체화시켰다면 사진은 재현과 표상이라는 개념을 확장시키고 구체화시키는 문물이었다. 근대적 공간은 새로운 표상들로 가득 차 있고 표상의 확실성이야말로 진리이자 가치가 되었다. 근대인들은 그림이나 글보다도 더욱 확실한 표상 매체를 원했고 사진은 그런 요청에 의해 탄생했으며 훌륭히 그 요구에 부응했다. 사진이 이 시기를 이해하고 설명하는 데 핵심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이것이다. 결국 우리가 알고 있거나 안다고 믿는 근대의 모습이란 ‘사진으로 표상된’ 이미지를 통해 출현하며, 그 이미지로 근대를 이해하고 설명한다. 사진은 자동발생적이고 기계적인 재현 방식으로 그림이나 글보다 훨씬 즉물적인 형상을 만들어내며, 대량 복제까지 가능해 정확하고 공평한 표상 매체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어 사진이야말로 표상의 확실성을 대변하는 최고의 매체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그러나 여기에 사진의 함정이 있다. 재현 방식이 객관적인 것과는 달리 사진의 주제와 구성은 얼마든지 주관적인 개입이 가능하기에, 누가 재현했느냐에 따라 사진의 사태는 다르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 함정의 아찔한 점은 식민지 시기 조선의 이미지는 주로 일본인들에 의해 생산되었다는 사실에 있다. 즉 우리의 근대 이미지가 일제에 의해 조작되고 왜곡된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 이미지 이면에 작동하는 일본식 오리엔탈리즘적 시각에 유의하면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이처럼 『경성, 사진에 박히다』는 우리에게 남은 ‘근대 이미지’의 재현 방식에 의문을 재기하며, 누가 어떻게 무엇을 왜 사진으로 박아 남겨 놓았는지 ‘사진의 알리바이’에 대한 추적을 통해 사진이 말하는 사실과 말하지 않는 이야기를 복원한다. 사진 문화, 근대 사회와 사건을 새롭게 분석하고 구성하게 하다 『경성, 사진에 박히다』는 그런 재현 방식에 대한 질문에 더해, 문화 현상의 하나로서 사진이 어떻게 사회 속에 스며들어갔는지 그리고 당대인들의 반응은 어떠했는지 주목한다. 사진의 도입으로 탄생한 새로운 사회사와 문화 영역은 엄청나다. 근대로 돌아갈 것도 없이 현대의 경우만 둘러보자. 사진이 없는 결혼식을 상상할 수 있을까? 백일, 돌, 입학, 졸업, 장례 등 기념사진을 빼놓고는 완성되지 않는 통과의례와 관광사진, 초상사진, 가족사진에서 사건사고 현장 검증사진에 이르기까지 사진 행위 그 자체로만 이루어진 사회적, 문화적 행위가 일상 곳곳에 스며 있다. 이런 사진 문화들의 기원으로 거슬러 올라가보면 그 문화들이 생각보다 매우 일찍 형성되었다는 사실에 한번 놀라고, 근대에서 현대까지 이어져오는 사진 문화들의 양상들이 약간의 변주는 있을지언정 너무나 비슷하다는 것에 한 번 더 놀라게 된다. 하와이로 이민 떠난 조선 남성들이 사진 한 장으로 고국 땅에서 신붓감을 구했던 사진결혼이라는 현상은 지금 농촌 총각들이 알선업체가 제공하는 베트남 ․ 조선족 신부들의 사진을 훑어보는 국제결혼과 너무나 닮았다. 또한 전날 사진관에서 찍은 사진을 신문사에 보내고 자살한 젊은 학생의 사연 위로 2007년 세계를 놀라게 한 버지니아 공대 총기 사건의 주인공인 한인 학생의 모습이 겹친다. 이토 히로부미를 죽인 안중근의 사진이 조선과 일본 양국에서 인기 상품이 되어, 마치 오늘날의 체 게바라 사진처럼 대중적 아이콘이 되었다는 사실도 흥미롭게 다가온다. 신문 속의 노골적인 에로 사진 광고는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모습은 다를 바가 없다고 웃음을 흘리게 만들기도 한다. 이렇게 사진 문화를 통한 문화 연구와 분석은 근대인과 현대인의 사회적 감수성과 그 흐름을 새롭게 이해하는 틀을 마련해준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 ■ 책 속으로 사건의 도가니, 근대를 뒤흔든 열 가지 사진 사건을 공개합니다! ‘불온한’ 레닌 사진을 압수하라 함북 청진에 사는 이선우는 레닌의 사진을 자기 방 벽에 걸어 두었는데, 마침 약품 조사를 왔던 청진경찰서 순사가 이것을 보고 “당신이 이 사진을 걸어둔 것은 이 사람을 숭배하기 때문이 아니냐” 며 사진을 압수해 갔다(《조선일보》, 1924년 12월 15일자). 일제는 신분 증명이라는 틀로 조선을 한 번 더 묶어놓았으며, 각종 사진 유통 규제와 촬영 규제로 조선인들의 근대적 재현 행위를 방해했다. 사상 규제를 위해 레닌 사진을 압수하고 안중근 사진을 판매 금지시키던 행태들은 1980년대 공안 사건을 떠오르게 하며, 최근의 국방부 불온서적 파동과도 닮아 있다. 사진을 이용한 일제의 사상 규제와 조선 사회 통제를 파헤친다. 떴다 보아라 안창남의 비행기! “이 경성 하늘에 비행기가 뜬 것은 결코 한 두 번이 아니었겠지만 그 비행은 우리에게 있어 어떤 의미에서 모욕이며 어떤 의미에서는 위협이기도 했습니다.” 독립운동가이자 비행사인 안창남이 1922년 12월 10일 조선인 비행사로서는 처음으로 경성 비행을 마치고 그 소회를 발표했다(《개벽》, 1923년 1월호). 경성의 하늘을 일본인 비행사에게 먼저 내준 식민지 조국의 치욕스런 역사, 그 역사를 바로잡으려 비행사가 된 안창남의 행보가 공개된다. 조선과 일본에서 활발한 비행 활동을 펼치며 독립 운동에도 일조한 비행사 안창남에 대한 일제의 탄압을 폭로하고, 비행 활동과 항공사진 규제로 조선의 자유로운 근대적 체험의 길을 막아버린 일제의 식민 전략을 고찰한다. 이홍경, 경성 최초 ‘부인사진관’을 개업하다 “금춘을 기하여 좌기 장소에 초상과 및 사진업을 개하옵고 3200촉의 전기를 응용하와 정선한 기술로써 요구하시는 대로 수응하겠삽기 이에 광고하오니 사해 신사숙녀 제위는 여자 사업계의 첫거름임을 넓히 애고찬동하시와 일차 시험하여주심을 업대여 바라나이다.” 여성 사진사 이홍경이 사진관을 열고 신문에 낸 광고 문구다(《동아일보》, 1921년 5월 23일자). 경성 최초로 ‘부인사진관’을 열고 남성 사진사들과 당당히 경쟁하며 사진관을 꾸려나간 프로 사진사이자 이후 근화여학교 사진과 교수가 된 신여성 이홍경의 이야기가 밝혀진다. 1930년 사진사 수가 1800여 명에 이르기까지 폭발적으로 대중화된 사진관의 번창기를 읽어가며, 각종 사건사고와 독립운동 사건에 연루되어 경찰에 끌려간 사진사들의 수난기에도 눈길을 돌려 본다. 소년 사진사 백골 사건 1938년 9월 16일 정릉 신흥사 뒤편 소나무 숲에서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부패된 시체가 발견되었다. 부검할 수 없을 정도로 부패해 백골만 남은 이 시체 곁에는 대형 사진기가 놓여 있어, 죽은 이가 출장 사진사라는 사실만 알 수 있을 뿐이었다(《동아일보》, 1938년 9월 18일자). 사건을 맡은 동대문서는 대전으로부터 받은 편지로 죽은 이의 신원을 밝혔다. 도렴정 문화사진관의 견습 사진사인 17세 소년 이동만이 살해당한 것이다. 도대체 누가, 무슨 이유로 어린 견습 사진사를 죽인 것일까? 이 사건 외에도 조명 폭발 사고나 천재지변으로 인한 촬영 시설 파손부터 시작해서 빈번히 일어난 카메라 절도, 강도 사건에 사기 사건까지 사진과 관련된 다양한 범죄를 재구성한다. 박열 부부 괴사진, 일본 정계를 뒤흔들다 1927년 1월 21자 《동아일보》에 발표된 사진 한 장이 이후 10년 동안 논란의 대상이 될 줄 누가 알았을까? 그리고 어떻게 단 한 장의 사진이 일본의 와카스키 내각과 야당 정우회를 일대 파란으로 몰아갈 수 있었을까? 조선과 일본 언론을 뒤흔든 대사건, 아나키스트 박열과 후미코 부부의 괴사진 사건이 소개 된다. 대역 사건으로 교도소에 갇힌 부부가 어떻게 한 방에서 다정히 포옹한 채 사진을 찍을 수 있었나에 대해 분분한 논란이 오고갔다. 일본에서 반천황제 투쟁으로 아내 가네코 후미코와 폭탄 투척을 모의한 대역 사건의 주인공이면서, 이후 전향하여 미나미 총독을 감동시켰다는 일제 어용 미담의 주인공이 되기도 한 박열을 둘러싼 진실을 추적한다. 조선의 체 게바라, 안중근 사진 사가시오 “어렸을 때 이토 히로부미를 살해한 안중근의 사진을 보고, 그 사람은 위대한 사람이라고 항상 부러워했다.” 1926년 4월 28일 일본 국수회 지부장 다카야마 다카유키와 일본인민회 이사 사토 코지로를 습격한 송학선이 7월 15일 열린 공판에서 안중근의 사진을 보고 그를 숭배하였다고 고백했다. 안중근 사진은 사실 일본인들이 먼저 팔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처음에는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 범죄자 사진엽서로 제작되었지만 일제의 의도와는 달리 너무나 잘 팔려나갔다. 조선인은 조선인대로, 일본인은 일본인대로 정치 거물 이토 히로부미를 죽인 그 대단한 인물이 누구인지 궁금해 했던 것이다. 일본인 상점에서까지 ‘테러리스트’ 이자 ‘충신’ 안중근의 사진을 팔았고, 다급해진 일제는 부랴부랴 판매를 금지시켰다. 지금의 체 게바라 사진마냥 대중의 사상적 아이콘이 된 안중근 사진의 자세한 사연이 밝혀진다. “옛날 사진 찍던 그곳에 가서 죽을 테여요” 1926년 6월 20일 젊은 여성의 초상 사진 한 장이 신문에 실렸다. 18일 새벽 1시경 독약을 먹고 자살한 20세의 주부 한경숙의 사진이었다. 이 사진은 한경숙이 죽기 바로 전날 경성에서 가장 유명한 사진관이었던 암전사진관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암전사진관 주인 이와다는 정성껏 사진을 찍어준 부인이 자살했다는 기사를 다음날 신문에서 보고 말을 잃었다. 심지어 한경숙은 임신 3개월째였다. 어떤 괴로움이 아이를 가진 여인을 자살로 몰아갔을까. 그리고 그녀는 왜 죽기 전날 사진을 찍었을까? 근대인에게 사진이란, 영원히 변치 않을 자신의 모습으로 남아 결국 자신과 동일시되는 상징이라는 의미로 다가왔는지도 모른다. 자살하기 전 유서를 쓰듯 사진을 찍은 사람들, 이루지 못할 사랑에 함께 목숨을 버린 연인들이 함께 찍은 사진, 배우의 사진을 연인인 양 간직한 이야기들이 또 하나의 애잔한 사진 문화의 풍경으로 펼쳐진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 조선으로 오세요 1936년 조선총독부 철도국에서 『조선의 인상』을 발행했다. 이 작은 관광책자의 표지에는 새침한 얼굴로 고궁 기둥에 수줍게 기대어 선 두 명의 기생이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조선을 알리는 사진엽서에도 얌전한 기생의 얼굴과 쓰개치마 쓴 다소곳한 여인이 실렸다. 기생과 때묻지 않은 자연의 풍광은 차차 조선 여행 책자의 단골 화보가 되어갔다. 아름답고 순수한 풍광, 청초하며 매혹적인 기생들이 있는 ‘고요한 아침의 나라’ 조선. 하지만 조선은 정말 태초부터 고요한 아침의 나라였을까? ‘있는 그대로의 자연’, ‘연약한 여성’ 이라는 이미지를 덮어씌워, 조선을 마땅히 정복하고 계도해야 할 미개지로 만드는 일제의 관광 사업책을 근대 관광사진과 사진엽서를 통해 파헤친다. 신랑 찾아 삼만리, 하와이로 간 사진 신부들 《매일신보》는 1914년 6월 13, 14, 16일 3일에 걸쳐, 하와이 사진 신부의 기구한 사연을 연재했다. 평양에 살던 19세의 청상과부 박성삼은 하와이 교포 김성운과 사진결혼을 해 하와이로 떠났지만 생각과는 너무나 다른 생활과 남편의 학대를 견디지 못해 호놀룰루의 모 교회로 도망쳐 참혹한 생활을 하게 되고, 여기에 그녀의 모친 홍기안이 딸이 정신병원에 있으니 돈을 부치라는 등의 사기를 당하고 딸을 찾아 동분서주하는 사연까지 가세해 소설이 따로 없을 만큼 긴박한 사진결혼 이야기를 보여준다. 사진 문화가 형성되면서 등장한 독특한 결혼방식이 바로 사진결혼이다. 하와이로 이주한 조선 남성들과 결혼하면 보다 나은 삶이 펼쳐질 것이라는 꿈을 품고, 사진 한 장만 보고 인륜지대사를 결정한 사진 신부들의 이야기가 풀려 나온다. 사진 신부들은 어떻게 하와이로 떠났으며 이들은 어떤 결혼생활을 했을까? 사진결혼은 한국 농촌 총각들과 베트남․연변 등지의 외국인 신부들과의 국제결혼이라는 형태로 지금까지 그 맥을 이어오고 있는 만큼, 주목해 볼 만한 근대의 사진 사건이다. 비밀 사진을 아시나요? 1935년 1월 27일 밤 경기도 안성에서 청년 6명이 안성경찰서에 검거되었다. 이들의 범행이 ‘몰카 촬영 시도’ 라고 하면 믿을 수 있겠는가? 안성 읍내에 있는 조선사진관이 목욕탕 위층에 있었던 것을 이용해 마루창을 뚫고 아래층에서 목욕하고 있는 여성들의 알몸을 찍으려 했던 것이다. 기사를 쓴 신문 기자는 이들을 ‘에로청년’ 이라 불렀다. 바야흐로 ‘에로 그로 넌센스’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근대 조선을 습격한 포르노그래피들은 어떤 것이었을까? ‘비밀 사진’, ‘미인 나체 사진’, ‘에로 사진’ 등으로 불렸던 근대의 포르노그래피들과 관련된 사건들에 쓴웃음을 흘리게 된다. 《동아일보》나 《매일신보》에 게재된 놀라울 정도로 노골적인 포르노 사진 광고, 날개 돋친 듯이 팔려 나가는 불법복제 에로 사진, 포르노 사진과 서적을 탐독하다 망상에 빠진 여학교 선생 이야기 등 씁쓸하기도 하고 우습기도 한 ‘비밀 사진’의 행보를 추적해 보자. ■ 지은이 소개 이경민 한국 사진사 연구에 관심을 두고 사진 평론과 전시 및 출판 기획 등의 일을 해온 이경민은 현재 사진아카이브연구소(http://cafe.naver.com/fotoarchives.cafe)를 운영하면서 근대 사진 아카이브 구축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대학에서 도시공학을 전공했고 대학원에서 사진을 전공하여 2005년 중앙대 첨단영상대학원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계간 <사진비평> 편집위원을 역임했으며, 전시기획자를 대상으로 주어지는 '이동석 전시기획상'을 첫 회(2008)에 수상하였다. <기념사진전>(문예진흥원미술관, 1999), <다큐먼트전>(공동기획, 서울시립미술관, 2004), <유리판에 갇힌 물고기>(대안공간 풀, 2004), <우리사진의 역사를 열다>(한미사진미술관, 2006), <벽의 예찬, 근대인 정해창을 말하다>(일민미술관, 2007), <오월의 사진첩>(광주시립미술관, 2008) 등의 사진전을 기획했다. 주요 논문으로는 「사진아카이브의 현황과 필요성 고찰」, 「프랑뎅의 사진 콜렉션을 통해 본 프랑스인의 한국의 표상」,「잔더가 본 100년 전 한국의 풍경지리 」등이 있으며, 지은책으로 『유리판에 갇힌 물고기』(공저),『기생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구보씨, 사진 구경가다』,『벽의 예찬, 근대인 정해창을 말하다』(공저) 등이 있다. ‘구보씨’ 라는 아이디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전문적인 산보객이자 관찰자로서 다종다양한 근대 사진 아카이브를 구축하여 경성의 모습을 입체적으로 복원 ․ 재구성하는 <대경성 프로젝트>를 계획 중이며, 이를 통해 한국 근대성의 기원을 읽어내려는 엄청난 시도를 꾀하고 있다. ■ 차례 프롤로그 - 사진의 눈으로 근대를 바라보다 1부 권력, 사진에 눈뜨다 혼 뺏는 기계, 신분 증명의 도구가 되다 한반도에 사진 촬영을 허하라! 식민지 조선의 하늘과 감시하는 눈 특집1 - 보아라! 안창남의 비행기, 사진으로 보는 안창남 2부 경성 사진관에서 생긴 일 사진관 시대의 등장과 폭발적인 대중화 사진사의 수난 시대, 사진관의 사회사 여성 사진사 이홍경, 최초의‘부인사진관’을 열다 특집2 - 사진으로 맺은 사상적 동지, 안중근과 송학선 3부 사진, 사건 사고의 중심에 서다 아나키스트 박열 부부의 괴사진 사건 사기와 위조의 시대, 사진과 범죄의 재구성 삶과 죽음의 인덱스, 사진과 자살 특집3 - 경성 구경하세요! 경성유람버스 vs 서울시티투어버스 4부 사진을 둘러싼 신문화의 풍경들 사진신부, 결혼에 올인하다 - 하와이 이민과 사진결혼의 탄생 식민지 관광 사진의 정치학 욕망과 금기의 이중주, 에로 사진과 식민지적 검열 특집4 - 사진엽서로 기록된 조선, 근대 풍경의 이중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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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식민지 독립운동에 함께한 일본인 여성
Tracked from 일다의 블로그 소통 2009/02/01 04:47 Delete식민지 조선을 사랑한 일본 제국의 아나키스트. 일본인이자 조선인 독립운동가를 사랑했으며, 천황제에 반대하기 위해 황태자에게 폭탄을 던지려 했다는 죄목으로 사형언도를 받은 여자 가네코 후미코를 소개하는 말이다. 그녀는 일본 내에서는 천황제를 반대했다는 전력 때문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으나, 한국에서는 식민지 조선의 문제에 깊은 관심을 기울이고 공동투쟁을 계획했다는 점 때문에 상당한 관심을 받아왔다. 가네코 후미코는 어떻게 일본인이라는 선험적 조건을 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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